
안개를 찢는 노래
로스포트 항구의 밤은 언제나 침묵으로 짙어졌다.
사람들은 그곳을 안전한 울타리라 불렀지만, 카이에게는 모든 것이 멈춰버린 유적처럼 느껴졌다. 부두 끝에 정박한 낡은 목선 '알데바란' 호의 닻을 고쳐 잡는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안개 바다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언제나 같은 경고를 속삭이고 있었다. ‘네가 내린 잘못된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잊었느냐’고. 과거의 실패가 만든 거대한 그림자가 안개 속에서 붉은 눈을 번뜩이며 배를 에워싸는 환영이 카이의 등 뒤로 스쳤다. 숨이 막혀오는 공포에 카이가 밧줄을 놓으려는 그 순간,
"카이."
단단하고도 다정한 목소리가 어둠을 갈랐다.
루나였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낡은 등불을 켜 들고 배의 뱃머리에 서 있었다. 과거에 지키지 못한 이들의 손을 놓쳐버렸던 기억이 루나의 가슴을 찔렀지만, 그녀는 이번엔 눈을 감지 않았다. 루나의 품에서 흘러나온 작은 허밍이 밤바람을 타고 퍼져나갔다.
그 노래 소리에 맞춰, 시온이 배의 돛줄을 힘차게 당겼다.

"여기에 계속 머물러도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그렇지, 대장?"
시온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려 있었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안개 바다를 뚫을 듯 선명했다. 허무와 고립이라는 두려움이 환영처럼 다가와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시온은 코웃음을 치며 어제의 미련을 파도 속으로 밀어내듯 밧줄을 묶었다.
세 사람의 마음속에 품은 작은 별빛이 모이자, 칠흑 같던 바다 위로 기적처럼 은은한 빛의 궤적이 열렸다.
카이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항해사의 나침반을 집어 들었다.
"출항하자."
거친 파도와 내면의 두려움이 도사린 미지의 바다를 향해, 알데바란 호가 마침내 첫 번째 뱃머리를 돌렸다.

안개 속의 환영
알데바란 호가 항구의 등대를 완전히 등지자마자, 세상의 색채가 거짓말처럼 지워졌다.
사방은 온통 짙고 무거운 회색 안개로 뒤덮였다. 바람은 뚝 끊기고, 바다는 거울처럼 기이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그 고요함 속에서 배의 밑동을 긁는 쇳소리 같은 저음이 울려 퍼졌다.
– 네가 버리고 온 것들이 여기에 있다.
안개가 소용돌이치며 거대한 형체로 부풀어 올랐다. 그것은 형태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그림자, 모험가들의 마음속 어두운 구석을 먹고 자라는 '안개 괴수'였다.
카이의 눈앞에 환영이 스쳤다. 과거, 자신의 안일했던 판단 하나로 동료가 차가운 바다로 미끄러져 떨어지던 그날의 밤바다였다. ‘또다시 네 손으로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셈이냐.’ 괴수가 뿜어낸 한 줄기 안개가 카이의 목을 조여오는 듯했다. 카이의 손에 쥐여진 키가 파르르 떨렸다. 배가 옴짝달싹 못 한 채 제자리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그때, 카이의 떨리는 손등 위로 따뜻한 온기가 덮였다.
"카이, 혼자 짊어지려고 하지 마."
루나였다. 그녀의 눈앞에도 아득한 과거의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다. 지키지 못했던 이들의 슬픈 눈동자가 안개 너머에서 손을 뻗어왔지만, 루나는 두려움에 눈을 감는 대신 품속에 품은 작은 등불을 더 높이 치켜들었다.
"우린 지금 함께 이 바다를 건너고 있어."

루나의 목소리에 실린 진심 어린 온기가 어둠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카이의 눈빛에 서렸던 초점이 다시 또렷해졌다. 카이가 이를 악물며 키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래, 과거가 우리를 붙잡는다면 오늘 여기서 끊어내면 돼."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시온이 뱃머리로 뛰어올라 묶여 있던 닻줄을 거칠게 당겼다. 시온 역시 끝없는 허무함과 '이 고생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의심의 환영을 마주하고 있었지만, 그는 피식 웃으며 바다를 향해 소리쳤다.
"에라 모르겠다! 돌아가 봤자 옛날 그 답답한 항구뿐이잖아? 기왕 시작한 거 끝까지 가보는 거지!"
시온이 시원스럽게 내뱉은 외침과 함께, 세 사람의 마음속에 피어난 작은 별빛이 하나의 거대한 빛줄기로 뭉쳐졌다.
쾅–!
빛이 뿜어져 나오자마자, 카이와 루나, 시온을 덮치던 안개 괴수의 환영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비명을 질렀다. 괴수는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여전히 안개 저 너머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만, 적어도 지금의 알데바란 호를 멈춰 세울 수는 없었다.
안개가 반으로 갈라지며, 저 멀리 구름 사이로 희미하지만 찬란한 빛을 내뿜는 목적지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카이가 앞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돛을 더 올려라! 나아간다!"

구름 너머의 빛
안개 괴수가 물러간 자리에 언제 그랬냐는 듯 묘한 고요가 찾아왔다. 하지만 이전의 침묵과는 달랐다. 알데바란 호의 뱃머리가 가르는 파도 소리 위로, 세 사람의 고른 숨소리와 서로의 온기가 단단하게 얽혀 있었다.
구름은 점점 더 짙어졌고, 그 위로 눈이 시도록 찬란한 빛의 무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밀의 공중 도시, '아스트라'였다.
"저기... 보이지?"
시온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어둠이 감히 닿지 못하는 거대한 빛의 섬이 떠 있었다. 그곳은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무나 도달할 수 없는 곳이었다. 두려움에 굴복해 바닥에 주저앉았다면 결코 볼 수 없었을 풍경이었다.
하지만 배가 아스트라의 인근에 다다르자, 안개 바다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다시 한번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이번에는 환영이 아니었다. 물리적인 파도가 배를 집어삼킬 듯 덮쳐왔고, 배의 이음쇠가 삐그덕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너희들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바다의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카이의 손이 다시 한번 굳어졌다.
그 순간, 루나가 카이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고, 시온이 반대편에서 돛줄을 힘껏 끌어당겼다. 세 사람의 손바닥이 포개진 자리에서 아주 작지만 태양처럼 뜨거운 빛이 터져 나왔다.
"우린 이미 알고 있어.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루나가 조용히, 그러나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두려움을 안고서도,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카이가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키를 온 힘을 다해 틀어쥐었다. "가자, 우리의 별을 향해서!"
알데바란 호가 마지막 거대한 파도를 뚫고 수직으로 솟아올랐다. 배가 구름의 장막을 뚫고 빛의 세계로 뛰어드는 그 순간, 세 사람을 짓누르던 모든 안개와 괴수의 그림자가 거짓말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눈부신 햇살이 그들의 얼굴을 비추었다. 비로소 도착한 아스트라의 항구는 끝없는 새로운 길이 사방으로 뻗어 있는, 아직 이름 없는 찬란한 내일의 시작점이었다.
카이와 루나, 시온은 배의 닻을 내리며 서로를 향해 미소 지었다. 과거의 상처도, 다가올 두려움도 이제는 두렵지 않았다. 그 모든 순간이 마침내 새로운 이야기의 첫 장이 되어 그들의 뒤에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 「별을 향한 항해」 완 —